넉넉하게 짐을쌓야 한다. 다름 아닌 가을 산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단 말이다.
잘 챙기지 않으면 걷기도힘들고 부상 위험이 있어 형형색색을 품은 가을 산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그리고, 가을 산은 정상이 목적이 아니라 천천히 들머리와 계곡에 물들어가고 있는 자연이 품은 아름다움을 즐겨야 한다.
산청 황매산(1,113m), 넉넉한 억새평원
산등성에 오르니 좌우 억새군락지를 가로질러 정상까지 나무 계단이다.
연인이 오붓하게 오르기 딱 좋은 길이구나.
0.8km. 산 밑에서 바라본 큰 바위 얼굴은 꼭대기가 아니었다.
일단 한 단계 올라서야 새로운 길이 보이네. 300여 미터를 더 가니 정상석.
철쭉동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엔 황매산성이 있다.
봄기운 아지랑이인지 미세먼지인지 구분은 안돼도, 멀리 산그림자가 층층이 13겹이로구나.
햇살을 등지고 산그림자를 배경삼아 찍는 인물 컷은 누가 찍어도 걸작.
영주 소백산(1천439m), 새콤한 사과 맛 ‘일품’
황금솔밭 들머리를 지나면 한아름 안기 힘든 명품 소나무를 여럿 만난다.
송이가 많이 날법한 군락지. 올라갈수록 등산로가 반듯해 여느 도심공원을 걷는 듯하다.
1천 미터 고지를 넘어서니 노랑과 주황색으로 변하는 숲. 9월 말인데 벌써 단풍이라니.
하늘과 가까운 곳부터 계절이 찾는구나. 작은 나무들이 하나 둘 보이면 산마루다.
넓직한 나무계단이 하늘로 이어지고, 너른 풀밭이 펼쳐지면 산꼭대기.
백두대간의 허리를 지나는 지점이라 그런지 산객이 많았다.
영주서 재배하는 사과 종류가 생각보다 다양했다.
사과 대통령한테 추천받은 제철 사과를 두 봉지 챙겼다.
완주 모악산(793m), 김제평야를 품었다
대원사를 지나다 해우소 옆 단풍나무가 자색 낙엽과 어울려 화려하다.
그 붉디붉은 가을에 어찌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있으랴. 다들 멈추어 사진을 찍는다.
사자 네 마리가 탑을 받치고 선 5층 석탑도 볼거리다. 바람과 구름으로 다독인 돌을 품은 듯 수행처와 어울린다.
햇살 가득한 초록 조릿대가 줄 지어 서고, 하늘거리는 억새를 만날 때 즈음, 사람 사는 마을이 보이면 산마루다.
하늘 아래 탁 트인 시야, 넉넉한 김제 평야도 보이고, 저수지 품은 마을도 살갑다.
평창 오대산 비로봉(1,563m), 겨울 채비 마친 나무들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현무암으로 계단을 쌓았는데,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이 들머리다.
국내 다섯 사찰 중에 가장 높은 곳에 붇다 진신사리를 모신 성지.
돌계단을 오르다가 산을 오르는 목적에 따라 갈림길에 선다.
왼쪽은 적멸보궁을 찾는 성지 순례자, 오른쪽은 1.5km 남짓 비로봉을 향하는 명산 순례자.
해발 1천여 미터서 걷는 가을 길은 처연하다.
강원도 거개의 산이 그러하듯, 고목으로 누었거나 서있다.
그나마 살아있는 나무는 잎을 다 떨구어 내고 알몸이 되었다.
하늘로 솟은 큰 나무가 어느새 사라지고, 계단길이 이어지면 드뎌 정상이다.
맵찬 바람에도 자리를 지킨 작은 나무가 의지하는, 비로봉 평지. 멀리 주문진 마을이 있다.
바다를 보려고 애썼는데, 그 마음을 읽었을까, 산그리메를 구름띠가 수평선처럼 에둘렀다.
홍천 계방산(1,577.4m), 푹신한 자색 비단길 걷는다
홍천 계방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다음으로 한국에서 다섯 번째 높은 산이다.
산행 들머리는 운두령(1,089m). 높은 고개서 입산하니 바로 산마루다.
올해 떨어진 싱싱한 나뭇잎으로 단장한 오솔길. 바람 소리가 특이하다.
하얀 바람개비가 도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그래, 센 바람 부는 강원도는 다르구나.
숲이 깊어질수록 크고 굵은 나무가 있고, 키 작은 조릿대는 파릇하니, 지천으로 널려있다.
3km 남짓 오르니 전망대, 짙은 안개 탓에, 산 아래 풍경이 얼비쳐 보인다.
20여 분만 더 가면 정상, 가는 도중에 우람한 주목을 만났다.
파아란 생기를 뿜는 젊은 나무다.
1년에 10센티씩 자란다는 데 몇 백 년이나 묵었을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