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몽양 여운형 선생의 삶과
정신을 알리고자 생가의 복원과 함께 2011년 11월 17일
개관하였습니다. 몽양기념관은 개관 10주년을 맞아
리모델링을 통해 2022년 1월 25일 재개관 하였습니다.
생가는 1715년(숙종 41년) 함양 여씨가 자리잡고
영회암(영회암)이라는 이름으로 지은 집으로, 여운형 선생이
태어나고 애국계몽운동을 실천한 곳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중 소실되었다가 2001년 양평군민들의 노력으로
생가터가 정비되고,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평등, 애국계몽의 길
몽양 여운형 선생은 동학을 근본으로 한
평등의 이념을 평생 실천하며,
기독교를 통해 습득한 신학문을 기반으로
계몽을 통한 민중의 자각을 주장한
애국계몽운동가였습니다.
자유, 자주 독립의 길
여운형 선생은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 3.1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된
신한청년당의 활동, 적의 심장부에서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한 도쿄국제호텔
연설 등 우리의 독립 의지와 열망을
알린 독립운동가입니다.
용기, 청년을 위한 길
1933년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으로 취임한
여운형 선생은 체육을 장려하고
후원을 통해 손기정 선수와 같은 체육인을 양성하였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청년들에게 스포츠 정신으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정정당당
하게 싸울 것을 강조하면서, 체육 진흥의 전구자이자
청년들의 지도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평화, 민족통일의 길
여운형 선생은 조선건국동맹의 조직과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이끌며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독립국가 건설을 준비했던
해방된 나라를 준비한 설계자였습니다.
또한 좌우합작위원회를 조직하여 좌우의 합작과
남북연합을 통한 통일된 정부와 자주독립국가
수립을 주장했던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몽양 여운형의 길
해방 이후 수차례의 테러 속에서도
통일을 주장하며 횔동을 이어가던
여운형 선생은 1947년 7월 19일
결국 종로 혜화동 로터리에서
괴한의 총격에 의해
서거하셨습니다. 여운형 선생의
장례는 60여 만명의 추모 물결 속에서
남과 북이 함께 치른 인민장(지금의 국민장)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통일된 조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현재 포르말린 용액으로 방부처리된
상태로 통일된 나라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몽양기념관, 가볼만한 곳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묘골 언덕에 자지 잡고 있는 생가는
함양 여씨가 양평에 입향한 1715년(숙종 41년)에 처음 지어졌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1886년에 태어나서 1908년 부친 탈상을 끝내고
서울로 이사 갈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으며, 해방 전후인
1940년대 초중반에도 종종 내려와서 지내셨습니다.
선생이 떠난 후 집은 점차 퇴락하여 바깥채 지붕이 초가로 변경되었다가
한국전쟁 와중에 소실되었습니다. 2001년 양평군민들의 노력으로 생가터가 정비되었고
2011년 복원되었습니다.
묘골애오와 공원은 여운형 생생의 세계를 무대로한
외교 활동을 테마로 신원리 묘골에 조성된 공원입니다.
애오와(애오와)는 여운형 선생이 직접 쓴 글귀로
‘나의 사랑하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념관에서 애오와 공원까지 걷는 ‘몽양 어록길’은
여운형 선생의 어록을 읽으며 걸을 수 있는 도보길입니다.
비석에 새겨진 글 귀를 통해 선생의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관람요금 및 찾아오는 길
개관시간
하절기(3월 10월) 9:30~18:00(입장마감 17:30)
동절기(11월~2월) 9:30~17:00(입장마감 16:30)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설날, 추석 당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 날 휴관
관람료(단체요금은 20명 이상 적용)
어른: 개인 1,000원(단체 800원)
중고생: 개인 800원(단체 500원)
초등학생: 개인 500원(단체 400원)
양평군민, 만 65세 이상,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 등 무료 관람
찾아오는길
자가용: 6번 국도 신원역으로 진입, 몽양기념관 주차장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몽양길 66